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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하우스푸어..

  김영우
201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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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금만 있으면 아파트 소유 광고에 현혹 4억짜리 집 분양
원리금 폭탄에 생활 만신창이 전매·해지도 안돼 눈앞이 캄캄
투기꾼이라 욕해도 괜찮지만 능력 안되는 사람에게 집 팔고 돈 빌려준 은행·건설사도 공범

서울경제신문이 지난달 28일부터 빚을 진 채 집을 샀다가 다중채무자로 전락한 이른바 '하우스푸어' 등 가계부채 문제를 지적한 후 한 독자가 자신의 삶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의 편지에는 하우스푸어들이 51조원에 이르는 빚을 지고 생활해가는 삶의 편린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서울경제는 하우스푸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림과 동시에 금융당국의 정책적 대응에 참고가 되기 위해 이 독자가 보내온 편지를 토대로 다중채무자로 대변되는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다.

서울경제에 편지를 보내온 사람은 올해 나이 34세의 가장이 된 이철진씨. 그는 어릴 적 판자촌의 삶에서 시작해 사회생활 13년 만에 어렵사리 집을 장만했지만 빚에 가위 눌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채 분양권을 되팔려 해도 팔지 못하는 우리 사회 하우스푸어의 단면이다.

이씨가 어릴 때 산 곳은 서울 금호동의 속칭 '달동네' 판자촌이었다. 이듬해 그의 집과 멀지 않은 판자촌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서울시내 판자촌을 대대적으로 철거했던 도심미관정비사업의 일환이었다. 그의 집도 사라졌다.

철 없던 여덟살 아이는 이사 가기 전날 밤 들뜬 마음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우리도 이제 아파트에서 사는 거야?" 얼마 안 되는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챙기던 엄마는 아이를 쳐다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아이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함께 울었다.

아파트에 사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던 해 그 소원을 이뤘다. 그의 가족이 49㎡의 국민임대주택으로 이사한 것.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교 졸업 후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에 취업하며 임대주택에서 나와야 했다.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버지와 이씨의 월소득 합산액이 300만원여서 임대주택 입주자격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집저집 옮겨 다니는 지긋지긋한 월세살이가 시작됐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가 지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직후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가 된 것. 당시 상호신용금고(저축은행)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화물차를 구입했던 게 화근이었다. 서른두살 혼기가 찬 이씨는 같은 공장 여직원과의 결혼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수입이 없는 노부모와 대학 졸업 후 인턴생활을 전전하는 다섯살 터울 남동생까지…, 이씨는 네 식구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결국 식을 올리지 않은 채 네 식구가 살고 있는 방 두칸짜리 월셋집(보증금 2,000만원, 월세 60만원)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 이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다섯 식구가 모여 살기에도 비좁은 월셋집에 아이가 태어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때 우연히 미분양아파트를 할인 분양한다는 분양광고지가 이씨의 눈에 들어왔다.

'계약금 5%(2,000만원)만 있으면 수도권의 프리미엄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다'는 광고문구였다. 결국 아내와 남동생 공동으로 2금융권에서 신용대출로 2,000만원을 빌려 분양가 4억원짜리 82㎡ 아파트를 계약했다.

건설사가 지정한 시중은행을 찾은 이씨가 아파트 집단대출을 신청하자 곧바로 중도금 2억4,000만원을 대출해줬다. 평생 구경해본 적도 없는 큰돈을 순순히 내주는 은행에 놀란 이씨에게 은행 직원은 "아파트 계약자가 아니라 시공사를 보고 빌려주는 돈"이라고 말했다. 집단대출은 시공사가 보증을 서고 아파트를 담보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자 개인의 신용도나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처음으로 내 집을 갖게 됐다는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씨 가족은 다음달부터 2금융권에서 빌린 돈의 원리금 폭탄을 고스란히 맞았다. 현재 거주하는 집의 월세와 원리금까지 150만원에 달하는 금융비용으로 생활은 더 팍팍해졌다.

거기다 이씨가 쥐고 있던 분양권 가격까지 계약 당시보다 10% 이상 하락했다. 부동산경기 침체의 여파였다. 눈앞이 캄캄해진 이씨는 건설사를 찾아가 "계약금 2,000만원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건설사는 이씨에게 분양가격의 10%(4,000만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요구했다.

당장 생활비도 빠듯한 이씨 가족에게 4,000만원은 너무 큰 금액이었다.

뾰족한 방법도 없이 애만 태우다 다달이 빚 상환에 허덕이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이씨가 계약한 아파트는 올해 말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씨는 중도금이자후불제로 그동안 지불하지 않았던 중도금대출이자 3,000만원가량을 잔금과 함께 한꺼번에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연소득이 2,400만원에 불과하고 1ㆍ2금융권에 2억5,000만원이 넘는 채무를 가진 이씨가 추가로 자금을 융통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올해 말이면 저 역시 채무불이행자가 됩니다. 가족들이 남 눈치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는데 그 꿈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됐어요."

이씨는 자기를 '부동산 투기꾼'이라 욕해도 상관 없다고 했다. 모든 책임도 짊어지고 가겠다고 했다. 다만 내 집 마련이라는 맹목적인 꿈을 좇는 서민들, 능력도 소득도 되지 않는 그들에게 집을 팔고 돈을 빌려준 건설사와 은행 역시 공범이라고 이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 1,000만원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집단대출로는 연간 소득의 10배가 넘는 돈을 거리낌없이 쥐어주며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은 은행과 건설사입니다. 하우스푸어(다중채무자)를 양산하는 공범인 셈이지요."

http://economy.hankooki.com/lpage/finance/201206/e20120614175319117450.htm